갯벌과 바다를 메워 세계로 뻗은 150년의 항적(航跡), 국립해양박물관 《개항, 부산항 150년》

부산항 개항 150주년 기념 기획전시 현장 동행 취재 및 백승주 전시기획팀장 인터뷰

국립해양박물관 외벽에 내걸린 부산항 개항 150주년 기념 기획전시 배너
국립해양박물관 외벽에 내걸린 부산항 개항 150주년 기념 기획전시 배너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로 문을 연 부산항이 올해로 개항 150주년을 맞았다. 작은 어촌 포구에서 출발해 연간 2,440만 TEU의 화물을 처리하며 세계 7위(환적 2위)의 글로벌 물류 허브로 우뚝 선 부산항. 그 150년의 굽이치는 파도와 눈부신 도약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다. 영도 바다를 마주한 국립해양박물관 기획전시실 1에서 열리고 있는 부산항 개항 150주년 기념 기획전시 《개항, 부산항 150년》 현장을 찾았다.

글: 편집실 / 취재 동행 및 해설: 백승주 전시기획팀장

전시장 입구, 부산 해안선을 형상화한 대형 지형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장 입구, 부산 해안선을 형상화한 대형 지형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는다. 사진 ⓒBPA 편집실

“시련을 딛고 우리 손으로 일군 자긍심의 역사”

《개항, 부산항 150년》 전시 타이틀 벽을 배경으로 선 백승주 전시기획팀장.
《개항, 부산항 150년》 전시 타이틀 벽을 배경으로 선 백승주 전시기획팀장. 사진 ⓒBPA 편집실

전시를 총괄 기획한 국립해양박물관 백승주 전시기획팀장은 전시장 입구에서 이번 전시의 출발점을 힘주어 설명했다.

“부산항의 150년은 순탄한 발전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수탈과 6·25 전쟁이라는 국가적 시련을 거쳤습니다. 자칫 일제에 의해 부산항이 근대화되었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당시 시설들은 전쟁을 거치며 제 기능을 잃었습니다. 결국 전쟁의 폐허 위에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며 오늘날의 세계적 항만을 만들어낸 것은 우리 국민과 부산 시민들의 피와 땀이었습니다. 관람객들이 그 시련을 극복해 낸 ‘우리의 힘과 자긍심’을 체감하시길 바랐습니다.”

타 국·공립 박물관의 개항 기념 전시와 달리, 이번 전시는 오직 ‘부산항의 공간과 항만 인프라의 변천사’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한 100여 점의 핵심 해양 사료와 인터랙티브 디지털 기술을 집대성했다.

2부 개항 전시실.
2부 ‘개항’ 전시실. 부산항의 옛 지형을 비추는 인터랙티브 테이블 앞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사진 ⓒBPA 편집실

등으로 짐을 지고 나르던 숨은 주역, 『개항장 하역 노동자 사진』

전시는 프롤로그 서문과 1부 ‘시선(탐색에서 침략까지)’을 지나 2부 ‘개항(열린 문, 바뀐 항구)’으로 이어진다. 1876년 개항 이후 감리서와 해관이 들어서며 근대적 항만 체계가 태동했지만, 항만 경영의 요직은 외국인들이 차지했다.

이 시기 부산항의 가장 밑바닥에서 항만을 실제로 움직인 이들은 조선의 민중들이었다. 백승주 팀장이 첫 번째로 꼽은 대표 유물은 바로 『개항장 하역 노동자 사진』(1904년, 미국)이다.

부산항과 제물포 부두에서 하역 작업을 하거나 휴식 중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부산항과 제물포 부두에서 하역 작업을 하거나 휴식 중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 전시 캡션 中. 사진 ⓒBPA 편집실

“조선 말기 사회적 혼란 속에 생업을 잃은 평민과 농어민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개항장 부산항으로 대거 유입됐습니다. 당시에는 부두 접안 시설이 없어 외항의 선박에서 작은 나룻배로 짐을 나눠 싣고 해변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짐을 초량에 있던 기차역까지 일일이 사람이 등에 지고 날랐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부산항의 뿌리에는 바로 이 하얀 옷을 입은 조선인 하역 노동자들의 고단한 땀방울이 있었습니다.”

침략과 수탈의 치밀한 궤적, 『탐진강만기』

3부 ‘격동(수탈의 시대, 부산항)’은 일제가 대륙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1~4부두를 축조했던 수탈의 시대를 증언한다.

여기서 주목할 두 번째 유물은 일본이 1879년 작성한 『탐진강만기(探進江灣記)』다. 강화도조약에 명시된 ‘추가 2개 항만 개항’ 조항을 근거로, 일본 조사단이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며 각 포구의 수심, 바람, 접안 여건을 사진 찍듯 정밀하게 스케치하고 분석한 극비 군사·통상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훗날 1883년 인천항 개항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부산항을 시작으로 한반도 전역의 바닷길을 장악하려 했던 일제의 치밀한 침략 의도를 낱낱이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탐진강만기 필사본.
일본 조사단이 서해안 각 포구의 수심·바람·접안 여건을 정밀 기록한 필사본. 사진 ⓒBPA 편집실
탐진강만기 전시 현장.
사진 ⓒBPA 편집실

걸어온 길을 오감으로 마주하다, 실감영상관 ‘항적(航跡)’

실감영상관 항적.
좌우로 이어지는 거대한 곡면 스크린과 바닥의 부산 지형 부조가 관람객을 압도한다. 사진 ⓒBPA 편집실

전시실 중앙에 들어서면 거대한 곡면 벽면 스크린과 바닥 지형 부조(Relief)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번 전시의 백미인 몰입형 미디어아트 ‘항적(航跡): 부산항이 걸어온 길’이다.

바닥의 부산 지형 모형 위로 빛이 투사되자 1876년 자연 그대로의 갯벌과 백사장이던 부산포 해안선이 서서히 드러난다. 일제강점기 매립을 통해 1~4부두가 들어서고,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UN군과 피란민의 유일한 보급선 역할을 해낸 순간이 드라마틱한 영상으로 펼쳐진다.

1990 신선대부두 운영개시 영상 앞 어린이 관람객들.
“1990 신선대부두 운영개시로 글로벌 항만으로 도약” — 화면 앞에 옹기종기 모인 어린이 관람객들의 뒷모습이 전시의 생동감을 더한다. 사진 ⓒBPA 편집실

이어 1970년대 컨테이너 전용 부두가 들어서며 세계로 뻗어나가는 현대 부산항의 모습과, 오늘날 최첨단 스마트항만으로 진화한 부산항 신항 및 친수·관광 거점으로 거듭나는 북항 재개발의 청사진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150년간 갯벌과 바다를 메워 세계적 항만으로 우뚝 선 공간의 기적을 오감으로 체감하는 순간이다.

실감영상관 전시 영상.
사진 ⓒBPA 편집실
최첨단 스마트항만으로 진화한 부산항의 미래 영상.
오늘날 최첨단 스마트항만으로 진화한 부산항의 미래를 담은 영상. 사진 ⓒBPA 편집실

압축 성장의 상징, 『수출입컨테이너 1,000만 TEU 돌파 기념 대리석 동판』

전시는 전후 폐허를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 4부 ‘도약(세계적 항만으로)’으로 이어진다. 1970년대 세계 해운 시장에 불어닥친 컨테이너화 물결에 발맞춰, 부산항은 1978년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부두인 ‘자성대부두’ 를 개장했다. 찾았다! 해범이와 뿌뿌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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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범이와 뿌뿌

백승주 팀장이 안내한 세 번째 핵심 유물은 바로 『수출입컨테이너 1,000만 TEU 돌파 기념 대리석 동판』(1991년)이다. 자성대부두 개장 이후 불과 13년 만인 1991년, 부산항이 누적 컨테이너 처리량 1,000만 TEU를 돌파했음을 기리는 역사적 표석이다. 사람의 손과 지게로 짐을 나르던 작은 항구가, 불과 수십 년 만에 대형 컨테이너선이 쉼 없이 드나드는 세계적인 물류 거점으로 발돋움했음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수출입컨테이너 1,000만 TEU 돌파 기념 대리석 동판.
사진 ⓒBPA 편집실

7,000km 줄어드는 새로운 뱃길과 친환경 스마트항만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에필로그 ‘지평(다음 150년)’은 부산항이 마주할 미래를 제시한다. 전시 패널에는 기존 수에즈 운하 항로 대비 운항거리를 약 7,000km 단축하고 항해일수를 15일가량 줄일 수 있는 ‘북극항로’ 의 가능성이 펼쳐진다.

백승주 팀장은 “북극항로는 단순한 항로 단축을 넘어 운항 시간과 연료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여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친환경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현재 부산항이 추진 중인 신항과 진해신항의 100% 완전자동화 스마트항만 구축, 그리고 친환경 연료 벙커링 체계와 맞물려 부산항이 세계 최고의 친환경·스마트 물류 허브로 도약하는 미래 지향점을 담았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백승주 팀장은 독자들에게 따뜻한 당부의 말을 남겼다.

“부산역의 자리도 시대에 따라 여러 차례 옮겨 왔듯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부산의 일상 공간 곳곳에는 150년 부산항의 발자취가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곁의 부산항이 얼마나 치열한 노력과 자긍심으로 일궈진 공간인지 함께 공감하고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둘러보면 좋은 국립해양박물관 상설전시 안내

2층 기획전시실 1의 특별전을 관람한 뒤에는 국립해양박물관이 자랑하는 다채로운 무료 상설전시 시설을 함께 둘러보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 2층 어린이박물관: 바다와 해양 환경을 재미있는 놀이와 체험으로 배우는 특화 공간 (어린이 동반 가족 추천)
  • 3층 대형 원통 수족관 & 해양관: 약 70종 1,000여 마리의 바다생물이 유영하는 웅장한 수족관 터널과 우리 바다의 역사·문화·생태를 집대성한 해양관
  • 4층 항해관 & 4D영상관: 대항해시대 선박 유물과 나침반, 첨단 해양과학 및 산업의 현주소를 만나는 항해 전문 전시관
층별 상세 안내:  국립해양박물관 상설전시 층별안내(mmk.or.kr)

전시·관람 정보는 국립해양박물관 협조 자료를, 현장 사진은 2026년 8월 20일 BPA 웹진 편집실 취재 촬영본을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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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설명

기사에 나온 항만·해운 용어를 정리했습니다.

  1.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 — 1876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 부산항을 비롯한 개항을 이끌어 부산항이 근대 항만으로 전환되는 시발점이 됐다.

  2.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를 세는 국제 표준 단위.

  3. 감리서(監理署) — 개항장에서 외국과의 통상 및 외교 실무, 개항장 관리를 총괄하던 조선 말기의 특별 관청.

  4. 해관(海關) — 개항 이후 수출입 물품에 대한 관세 부과와 징수, 항만 출입국 업무를 담당하던 기관으로 오늘날의 세관에 해당한다.

  5. 자성대부두 — 부산항 북항에 위치한 컨테이너 부두로, 1978년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개장했다.

  6. 북극항로 — 북극해를 통과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로로, 수에즈 운하 경유 대비 운항 거리와 일수를 대폭 단축할 수 있다.